
웰빙음식반에서 진행한 탕평채입니다.
■ 재료
1. 소고기 100g
2. 청포묵 200g
3. 미나리 2개
4. 숙주나물 100g
5. 계란 1개
6. 홍고추 2개
7. 파 1대
8. 마늘 1작은술
9. 석이버섯 2장 또는 김 1장
■ 만드는 법
1. 소고기는 1cm 굵기, 5cm길이로 채썰어 마늘, 소금 양념후 볶는다.
2. 청포묵은 1cm 굵기, 5cm길이로 채썰어 소금 넣은 끓는 물에 데친다.
- 묵이 투명해지면 건져 찬물에 헹군다.
3. 미나리는 5cm길이로 썰어서 끓는 소금물에 넣은 후 바로 건져 찬물에 헹군다.
- 연한 미나리는 데치지 않아도 좋다.
4. 숙주나물은 데쳐서 찬물에 헹군 후 물기를 적당히 제거한다.
5. 4번의 숙주나물은 소금, 마늘, 참기름을 넣어 무친다.
6. 계란은 황, 백 지단을 부쳐 채썰거나 모양을 만든다.
7. 준비된 재료를 모두 넣고 참기름을 넣어 버무린다.
8. 기호에 따라 초간장, 겨자장, 초고추장 을 곁들여도 좋다.
◎ 요리의 Tip
1. 미나리를 양념 할때는 마늘을 사용하지 않는다.
- 마늘의 강한 향이 미나리의 향을 약화시킨다
2. 고기를 양념 할 때 후추를 사용하지 않는다.
- 탕평채에 사용하는 고기의 밑간에 후추 사용을 피함으로써 담백한 맛을 더한다
■ 탕평채의 유래
조선은 선조부터 정조 까지 거의 250년간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 대북과 소북, 노론과 소론, 청남과 탁남,시파와 벽파 등 사색 당쟁으로 골치를 앓았다. 따라서 왕비와 세자의 책봉, 대비의 상복 입는 기간, 왕위 계승 등 대소사를 모두 정치적 대결로 몰아가 국력이 크게 낭비되었다.
21대왕 영조 역시 당쟁의 피해자였다. 무수리 최씨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열등감에 시달리던 영조는 소론측이 장희빈의 아들 경종을 밀자 노론측의 도움을 많이 받아 즉위할 수 있었다. 그런데 1724년 경종이 게장과 생감을 먹고 집권 4년 만에 승하하자 소론은 이를 영조와 노론측의 독살이라 주장하며 1728년 이인좌의 난, 1755년 나주 벽서사건 등으로 영조의 정통성에 내내 시비를 걸었다. (게와 감은 한방에서도 상극이라 함께 먹으면 탈이 난다고 하는데 하물며 병약한 경종이 드셨다니... ) 급기야 영조는 매우 성격이 날카로와져 1762년 소론과 가까이하려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직접 가두어 죽이는 천인공노할 만행까지 저지른다. 경종을 모시던 상궁들이 세자를 양육한 것이 화근이었다. 궁중소설 <한중록>을 지은 세자빈 홍씨(혜경궁)는 가해자인 노론측으로 가급적 부자 사이의 불화문제로 사건을 호도하여 친정을 비호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영조는 드디어 아들까지 죽인 당쟁을 바로 잡으려고 당파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하는데 그 대책으로 요리 한가지를 제의했으니 그것이 바로 탕평채(蕩平菜)이다.
탕평이란 말은 서경(書經)’홍범조(洪範條)의 ‘왕도탕탕 왕도평평(王道蕩蕩 王道平平)’에서 나온 말로 왕은 자기와 가깝다고 쓰고 멀다고 쓰지않으면 안된다는 인재등용원칙이다.
북인(北人)은 검은색이니 석이나 김가루를 고명으로 쓰고 동인(東人)은 푸른색이니 미나리를 쓰고 남인(南人)은 붉은색이니 쇠고기를 볶아서 넣었다.
주재료인 청포는 흰색으로 서인(西人)을 상징하였다.
그러나 당시가 서인(노론) 집권기였던 것을 보면 주재료를 서인의 흰색으로 썼음을 알 수 있다
|